2011년 개봉한 영화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판타지 코미디 영화입니다. 주인공 걸리버는 회사에서 소외된 평범한 인물이지만, 뜻밖의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항해 중 미지의 세계에 도착하면서 거대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릴리풋이라는 소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원작의 철학적 풍자를 유쾌한 코미디와 시각적 상상력으로 풀어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걸리버가 여행한 미지의 세계 ‘릴리풋’, ‘브롭딩낵’, ‘라퓨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릴리풋 : 소인국의 세상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장소는 소인들의 세상 릴리풋입니다. 주인공 걸리버는 우연히 항해 중 폭풍을 만나 이 미지의 섬에 표류하게 되고, 깨어나 보니 온몸이 밧줄에 묶인 채 수많은 소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장면은 원작의 상징적인 장면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한 장면으로, 현대 관객에게 시각적인 충격과 유쾌함을 동시에 줍니다. 릴리풋은 신체 크기만 다를 뿐, 인간 사회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작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군주와 귀족, 군대, 민중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처음 낯선 걸리버를 본 릴리풋 사람들은 그를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그를 견제하던 소인들은 그의 인간적인 마음과 친절함, 따뜻함, 스마트폰, 라이터 같은 현대 문물을 통해 점차 마음을 열게 됩니다. 걸리버는 릴리풋을 침공하려는 적국의 공격으로부터 릴리풋을 지켜주며 '위대한 거인'이자 국민 영웅으로 사랑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걸리버는 점차 자신이 과장된 영웅 이미지와 허세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진정한 책임감과 신뢰감이 무엇인지 느낍니다. 릴리풋은 시각적으로도 매우 다채롭게 연출되었습니다. CG로 구현된 미니어처 도시와 소인국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판타지 영화만의 즐거움을 선물합니다. 또한 릴리풋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와 다른 외부인을 어떤 방으로 대하고, 힘의 균형을 어떻게 조율해 나가는지에 대해 유쾌하게 풍자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세계에서 걸리버는 '거대한 크기'보다 '작은 배려'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브롭딩낵 : 거인국의 나라
릴리풋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어디론가 끌려간 걸리버는 ‘브롭딩낵’처럼 자신이 소인이 되는 세계에 갇히고 맙니다. 영화에서는 원작의 거인국 브롭딩낵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잡혀간 걸리버는 거대한 인형극 무대 안에 갇혀 조롱당하고 명령받는 힘없는 소인의 입장으로 전락합니다. 이 장면은 전반부의 릴리풋에서 걸리버가 ‘거대한 존재’로 존경받았던 것과는 달리 자신보다 큰 존재들 앞에서 무력하고 왜소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반전적인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이 세계 안에서 그는 더 이상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아니며, 비웃음과 모욕의 대상이 됩니다. 신체의 크기와 위상이 정말 뒤바뀐 상황 속에서 그는 본인의 오만함과 허세가 불러온 결과를 몸소 느끼게 됩니다. 이는 원작에서 브롭딩낵이 인간의 오만을 반성하게 만드는 철학적 공간이었던 것처럼, 영화에서도 걸리버에게 겸손함과 자아 성찰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장면은 시각적인 반전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위상이나 대접이 바뀔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물리적 크기나 사회적 권력, 외적인 조건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며, 진정한 영향력은 타인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내면의 크기’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걸리버는 이 세계에서 비로소 자신이 놓치고 있던 인간관계의 본질과 내면의 성장을 깨닫게 됩니다.
라퓨타 : 천공의 성
걸리버는 릴리풋에 스마트폰이라는 현대 문물을 들여오면서 소인국의 문명과 기술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에서 원작 속 하늘 위 과학 도시 ‘라퓨타’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영화 속 여러 설정에서 라퓨타를 연상시키는 과학기술 중심의 세계관이 간접적으로 구현됩니다. 걸리버는 스마트폰, 라이터, 드럼 세트, 영화 DVD 등을 소인국에 소개하면서 자신이 ‘별세계에서 온 지식의 사도’처럼 행세합니다. 소인들은 걸리버가 소개하는 기술과 정보에 감탄하게 되고, 그를 신과 같은 존재로 떠받들게 됩니다. 그러나 기술의 일방적 유입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걸리버는 자신이 만든 구조물과 허세 속에 갇혀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게 되고 그 결과로 소인국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합니다. 릴리풋 내부에서도 걸리버의 행동이 계급 구조 변화를 야기시키고, 권력 투쟁과 갈등을 발생시키는 요인을 만드는 등 문제점을 낳게 됩니다. 이는 오늘날 현실에서도 과학 기술이 단순히 삶의 편의성을 넘어 사회 구조와 권력의 지표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걸리버 여행기는 이 사실을 유쾌하게 그려내면서도, 기술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파급력을 모두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는 릴리풋에서의 위대한 영웅이 작아진 자신을 마주하는 무기력함, 세계를 기술로 통제하려다 실패하는 교훈을 통해 내면의 성장시켜 나가는 걸리버의 여행기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볼 영화를 찾으시는 분,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현대적인 고전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